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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2012/01/06 04:03
몹시도 두서 없는 일기 


누군가를 만나 몇 시간을 보내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눴다고 느끼는 걸까? 방학이 되어 못 보던 친구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결국은 헤어져 집에 돌아올 때마다 이 질문이 떠올랐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혹은 둘 중 하나만을 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논문 초록처럼 띄엄띄엄 건네고 올 때, 그리고 둘 다 아는 지인들의 안부를 묻거나 뒷이야기를 하고 돌아오는 길. 결국 그 모든 이야기 뒤에 남는 건, 나는 잘 살고 있는 건가, 란 질문 같다. 나는 행복한가. 나는 잘 살고 있는 건가.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건가. 

**
방학이 끝나간다. 애초에 너무나 짧은 겨울 방학. 곧 학교로 돌아갈 남이 며칠 남지 않은 이맘때가 가장 마음이 가난해지는 것 같다. 여름방학 끝의 막막함과 겨울방학의 끝이 보일 때 느껴지는 조바심은 결도 색깔도 다른 것 같다. 다시 짐을 싸고, 14시간 조금 넘는 비행을 하고, 짐을 풀어야 할 때가 온 거다. 반복적인 일상이지만 매번 떠나고 도착할 때 느끼는 감정의 저항을 굳이 매번 이렇게 감수하며 살 필요는 있는 건가 싶다. 

***
"아름답게 쓰인 글"이 덮어버리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친구와 나눴다. 내 겨울방학은 바로 그렇게 아름다운 비평문을 쓰는 사람이 쓴 글, 추천한 책으로 시작해서 마무리가 되가고 있는 시점에, 너와 내가 읽은 그 비평가에 대해 내가 못 보고 있었던 것을 보게 해주고, 그것을 정갈한 언어로 표현해주는 너를 만나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건 고마운 일이다.  

"문단이 무슨 주소가 있는 곳인 줄 알았어요" 라고 했던 소설가에 대한 이야기. '문단'이라는 곳에서 서로 핥아주는 사람들. 문단이든 학계든 실상 다른 어디를 가든 우리는 소름끼치게 과열된 경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 어떤 직업을 갖든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서로 핥아주고 닦아 세워주며 세를 형성해가는 거겠지. 그것에 대해 새삼스레 구역질을 느낄만큼 더이상 순진하지도 않다. 밥벌이를 할 수 있고, 멘붕(멘탈 붕괴)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래도 내가 상대적으로 잘 하고 즐기는 일을 해내면 좋겠다. (라고 사춘기 소녀 마냥 서른 살 넘은 여자가 쓰고 있다.) 

****
결국 학위는 따야 하고, 최대한 미적거리지 말고 빨리 논문을 끝내야 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서 듣고나니 이제 마음이 prelim준비로 완전히 기울었다. 어제 새로 배운 말 '멘붕' 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앞으로 2년 내에 학위를 받는 일인 것 같다. 그 이후를 위한 준비도 역시 미리미리 해놓아야겠다. 공장 같은 프로그램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일에 나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확신이 없으면 가르치는 내내 그다지 행복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결국 좋은 선생도 되지 못할 것이고. 공장의 비숙련공으로 남다가 쓸려 없어질 것만 같다. 밥벌이가 된다 해도, 사람을 만나 생각을 교환하는 일에 있어선 절대로 기계적이 되어서도 안 될 것 같다.

#두서도없고_우울하고_암울한_대학원생의 일기.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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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려던말
편애하다2012/01/01 08:49
방학이다. 평소에도 늘 보는 드라마를 대놓고 열심히 볼 수 있는 귀한 시기다. 그래서 미국 평자들이 2011년의 좋은 드라마라고 꼽는다고, 한국 평자들이 자주 언급하던 Homeland를 챙겨 보았다. (내가 본방 사수하는 모든 드라마가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쉬고 있는 타격이 크다.) 이럴 때 '정주행'이란 말을 쓰던데, 대체 왜 정주행이지. 나는 산만하게 다른 일도 하면서, 그렇지만 놓친 부분은 열심히 되돌아가면서 보았다. 결국 만 이틀 동안 총 12편으로 구성된 시즌 1을 다 봤다. 열두 편이라니, 열두 편이라니. 너무 짧지 않은가. (ㅠ)  22편이 너무 길면, 그래도 18편 정도는 만들어주지, 싶게 눈물이 났다. 

** 그렇습니다. 스포일러 포함입니다. ** 

제목으로 유추해보는 9/11 이후의 반 테러리리즘 분위기 말고는 드라마 줄거리나 주인공에 대한 사전정보도 없이 첫 편을 시작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나오는 배우들이 쟁쟁했다. 내가 좋아하는 Claire Danes도 나오고, <밴드 오브 브라더즈>에서 못생겼지만 인상 깊었던 Damian Lewis도 나온다. 누가 더 핵심인물이냐, 그러니까 주인공이냐고 줄 세우기가 미안할 정도로 거의 모든 등장 인물이 무게있게 다뤄진다. 작가가 대본을 잘 썼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역도 사연이 있고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게. 

<홈랜드>는 8년 전 이라크에 파견되었다가 포로로 잡혀 실종되었고, 그 이후 죽은 걸로 처리 된 미 해병이 발견된 데서 시작된다.  미국 내 언론들은 '영웅의 귀환'이란 데 촛점을 두고 해군 브로디를 취재한다. 하지만 이라크와 알카이다를 오랫동안 다뤄온 케리 매티슨 (클레어 데인즈)은 자기의 정보원으로부터 포로로 잡힌 미군이 사실은 알카이다 요원이라는 사실을 접한다. 그래서 닉 브로디가 집으로 오기 전, 그의 집에 '불법으로' 감시 카메라를 방마다 설치하고 그를 주야로 감시한다. 그와 같이 밥을 먹고, 그가 잘 때고 잠꼬대나 악몽까지 필기할 정도로 깨어있다.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면서 이 드라마가 얻은 효과는 상당하다.  1) 국가 정보 기관에 의해서 (그들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엄청난 규모와 강도로 사생활이 침해/감시되고 있음을 시청자들에게 알리는 계몽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2) 시청자가 브로디를 감시하는 매티슨 요원과 사실 동일시되어, 관음증적 시각으로 브로디의 고통스러운 미국 생활 재적응 과정을 몰래 지켜본다. 여기엔 브로디의 부인 제시카의 관능적이고 아름다운 몸과 고문 흉터가 남은 브로디의 몸의 대비가 관음증적으로 소비되다가, 조금은 똑똑한 시청자라면 이 지점에서 고문과 정의, 그리고 공감의 문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여지까지 준다. 3) 드라마 내적으로 매티슨 요원은 감시를 하다 말고, 조금씩 브로디 요원에게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클레어 데인즈의 큰 눈과, bipolar인 그녀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가 이런 걸 잘 묘사해준다. (그녀의 정신질환은 사실 정보요원으로서의 그녀에게 강점으로 작용한다. 집요하게 대상을 관찰하고, 다른 사람이 미처 눈치채지 못하는 것을 보고, 전혀 뜻밖의 문제 해결책을 내놓는다. 그래서 12화에서 그녀가 받는 수술이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시즌2가 궁금하다.) 

어쨌거나 시즌 중반까지도 시청자는 브로디가 설마 재훈련된 알카이다 요원일까, 의심하지만 (매티슨도 3화부턴가는 감시 카메라를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시즌 1 후반에 가면 브로디가 엄청난 테러리즘 기획의 일부이며, 실은 앞으로의 역할이 더 복잡하고 예측불허일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써놓고 보니 줄거리는 간단하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묘미 중 하나는 영웅이 귀환했을 때, 그 영웅이 자신이 영웅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을 때 벌어지는 괴리감과 자의식, 그리고 영웅을 오래 (드라마에선 6년) 기다리던 젊고, 아름답고, 신실했던 아내
가 결국 남편과 군대 절친인 사람과 관계를 시작했을 때 그것을 돌아온 남편도 알고, 자신도 알고, 16살이 되어 알 건 다 알게 된 눈치 빠른 딸도 안다는 데서 일어나는 갈등을 정말이지 세밀하게 잘 묘사하고 있다는 데 있다. 평자들이 잘 쓰는 말을 하자면, 오디세우스의 귀환 서사를 미국 파병의 현실에 맞게 잘 비튼 것이다. 또 하나, 미군의 파병 역시 일종의 문화 접촉이 되면서 미군 역시 인간적 소통을 통해 이슬람 문화나 종교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 드라마에서 브로디는 자기가 마치 자신의 아들처럼 애착관계를 형성한 아이써 (라고들 발음하던대)의 죽음을 계기로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리스트로 변모한다. 흥미로운 건 양아들과도 같았던 아이써의 죽음 때문에 테러리스트가 되라는 명령을 수락했던 그가, 중요한 시점--자살 폭탄 조끼를 터뜨리려던 순간--딸의 전화를 받고 멈추는 데 있다. 

최근 보던 드라마 중 현실정치를 다루되 적당히 드라마틱하고, 사람 심리를 지독하리만큼 집요하게 들여파는 수작이라고 나는 평가한다. (평론가들이 괜히 칭찬한 게 아니었다.) <굳 와이프>와 함께 두고두고 늘 꺼내볼 드라마가 생겨서 좋다.  9/11 이후의 미국(과 관련 국가) 사회에 대한 내러티브는 벌써 몹시도 풍성하고 세련되게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부러운 마음도 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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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려던말
책꽂이2011/12/30 02:28
드디어 빌렸다, 김중혁의『뭐라도 되겠지』 (서울: 마음산책, 2011) 

헌사가 들어갈 자리에 차지한 문장부터 마음에 든다. 

"'재능'이란, 누군가의 짐짝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나에 대한 배려 없이 무작정 흐르는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운 다음에 생겨나는 것 같다. 그래, 버티다 보면 재능도 생기고 뭐라도 되겠지" 

말마따나 "누군가의 짐짝이 될지" 몰라 두려운 시절을 나는 시간 이 책을
즐겁게 읽고, 즐겁게 소회를 밝혀야겠다. 세밑을 다른 것도 아닌 김중혁의 산문집과 보낸다니 마음이 벌써부터 훈훈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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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려던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