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툴바


적당히 습기를 머금은 아침이었다. 적당하다는 건 내 몸이 견딜만 하다는 것이지, 절대적인 수치로 판단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적당히 바람이 불었고, 적당히 기온은 높았고, 그러므로 상당히 유쾌한 마음으로 아침 버스를 기다릴 만했다. 내가 사는 집 근처엔 2층 이상의 건물이 없을 뿐더러 아무런 건물도 세워지지 않은 너른 공터가 있는 까닭에 버스가 모퉁이를 돌아오는 게 한눈에 보인다. 버스가 시간에 맞춰 모퉁이를 돌다가 멈춰버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그쪽을 보니, 캐나다 거위 두 마리가 이차선 도로를 건너다가 맞은편에서 오는 차에 놀라서 다시 버스가 달리는 차선으로 방향을 틀어버린 것이었다. 거위가 갈피를 잃고 양쪽 차선을 헤맨 까닭에 결국 양쪽 차선의 차가 다 멈춰버렸다. 그리고 그 두 마리는 다시 원래 가려던 방향으로 서두르지도 않고, 저들이 늘 가던 속도대로 걸어갔다. 차들은 거위가 안전하게 길을 건널 때까지 얌전하게 기다려줬다. 내가 사는 동네의 속도란 게 무엇인지, 그리고 지난 삼 년 사이 내가 아끼게 된 풍경이 무엇인지 한눈에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길다랗게 자란 풀이 흔들리는 모습과 그 너머로 보이던 2차선 도로, 그 길을 건너던 거위 두 마리. 내 마음에 잘 찍어두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Creative Commons License
Creative Commons License

'다락'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로 더듬는 아침 풍경  (0) 2012/05/02
일요일  (0) 2012/03/25
부끄러운 후렴구  (0) 2012/03/23
무려 오션스일레븐!  (0) 2012/03/22
오늘도 여기에다 일기쓰기  (0) 2012/03/21
블로그를 트위터처럼 사용하기  (0) 2012/03/20
아델 그리고 봄  (0) 2012/03/19
Posted by 하려던말

쏘울푸드

편애하다 2012/03/26 20:38

외로움이 찐득하고 뭉근하게 따라붙는 밤. 식사를 했는데도 근원 모를 허기가 따라붙는 밤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쏘울푸드를 먹는다. 날 좀 아는 사람이라면 '오 Riesling이나 Moscato 마시려구?' 라고 하겠지만, 그건 주말용 어른이 쏘울드링크고. 이렇게 고아가 되어버린 것 같은 밤엔 내겐 비상 음식이 있다. 

바로 거버! 

동네 마트에 가면 베이비푸드 코너에서 찾을 수 있다.

오늘 장보러 갔다가 나름 큰 시험인데, 정작 가족들은 신경도 써주지 않는 시험을 앞두고 있는 나를 위해 격려용으로 사서 바로 허허로운 이 밤에 흡입하고 있다. 미덥게 여겨주는 건 고맙지만, 그래도 사랑과 관심과 격려가 필요한 서른 몇살 여자랍니다_- 쳇. 



울 어무니는 이걸 막내인 동생에게 먹이셨는데, 그때 좀 얻어먹었던 걸 기억한다. 동생이랑 나는 2년 5개월 차이니까, 걔가 배를 떼고 기어다니는 월령이 되었을 때 (그게 언제냐?@ㅗ@) + 17개월의 시점에 엄마가 스푼으로 준 그 맛을 귀신처럼 기억하고 있다. 내가 지금도 딸기+바나나 섞은 음료 좋아하는 건 다 이것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으로부터 자그마치 10년 전 캐나다에 교환학생 갔을 때도, 마트에 가서 이걸 젤 먼저 샀다. 한국보다 쌌고, 눈에 쉽게 띄었기 때문. 저 거버 아기 사진은 3x년 전과 달라진 게 아무 것도 없구나. 그래서 좋다.  



거버는 당신이 배를 떼고 기어다닐 수 있고, 턱을 사용해서 음식을 으깰 수 있을 때 먹으면 좋단다. 난 다 할 수 있으니까 먹을 자격이 충분! 내 친구들은 저런 걸 자기 자식 입에 떠넣어 주고 있겠지만. 아니다. 요즘 아기 엄마들 유난스러워서 방부제 없는 것, 소금 없는 것, 유기농 어쩌구 따지다보면 이렇게 방부제 많이 들어간 것 같은 베이비 푸드 따윈 안 먹일지도. 거버는 이게 내츄럴 하다고 광고 하는데, 내츄럴한 과일 이유식이 1) 냉장보관도 안 해도 되고, 2) 유통기한 짱 길다. 병조림은 원래 그런 건가? 



내가 가장 취약한 병 열기. 오늘도 저 양옆을 힘껏 밀어서 돌려야 하는 걸 모르고 뱅글뱅글 돌리기만 했다.

그래도 먹는 데 성공. 


외로운 밤 거버 머겅, 두 번 머겅. (homage to usamibabe)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Creative Commons License
Creative Commons License

'편애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쏘울푸드  (0) 2012/03/26
Feist "Tout Doucement"  (0) 2012/03/21
Homeland: 9/11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  (0) 2012/01/01
정기전의 기억  (0) 2011/09/23
미야자키 하야오 주간  (2) 2010/10/23
Posted by 하려던말

일요일

다락 2012/03/25 15:11

공식적으로 봄방학을 마감하는 시점이다. 봄방학 직전과 방학 기간 동안은 무더운 여름날 같더니만, 이제 완연한 봄인 것 같다. 기온도 적당하고, 햇빛도 조금은 온순해진 그런 날들이다. 그런데 학교다. (뙇!) 시험 일주일 전이니 당연한 거다. 











조금 전까지 삶이 묻어나지 않으므로 공허하기 짝이 없고 교조적인 설교를 삼십 분 동안 듣고 왔다. 동전을 넣으면 판에 찍은 듯한 설교를 뱉어주듯 기계적이고 예측가능한 설교였다. 또한 그에 못지 않은 회중 대표 기도도 빼놓을 수 없다. 장광설의 수사와 아무 것도 강조하거나 드러내지 않는 수식어로 가득찬, 그러나 어디에서든 한 번은 들어봤을 법한 교회식 수사. '은혜' '성령의 인도' '감동' 등과 같은 단어가 넘치지만 실체있는 기표와 연결되지 못하고 둥실둥실 떠다닌다. 

어쩔 수 없이 예배를 간다는 것이 지금 내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한지 몇 년째라는 게 문제다.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삶의 리듬을 의무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건지. 고역스러운 나날들이다. 언젠가 한철 내 가슴을 뜨겁게 했던 찬양을 부르면서, 저 젊은 때의 환상이 다 사라진 지금 이 지점에서 정녕 하나님의 공의와 도를 세상에서 실천하는 의미란 뭐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은 제도권 교회에서 말하는 방식과는 좀 다른 것 같은데, 나는 계속 이런 식의 제도권 교회에 몸 담고 있을 까닭은 뭐냐, 이런 생각만 하다가 돌아온다. 하나님은  크시겠지. 하나님은 사랑이 넘치시겠지. 그런 것 같다. 그런데 교회는 사소하고, 단조롭고, 얄팍하고, 대부분 위선적이다. 전하는 메시지가 대개 그러하다.  설교자의 수사나 어투가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를 완전히 배반하는 경우도 많다. 겸손을 강조하는 설교를 하면서 몹시도 교만한 투로 훈계조로 말한다거나, 나눔과 보답 없는 봉사에 대한 설교를 하면서, 절대 그런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낸다든가. 자신이 틀릴 가능성이 있다는 걸 전혀 인정하지 않는 듯한 태도로, 자기의 협소한 경험에 의존하는 것 역시 설교를 미치도록 편협하게 만든다. 


또 이런 생각도 한다. 교회엔 새신자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 설교가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교회에 몇십 년 넘게 오래 다닌 사람들, 웬만한 설교 스타일엔 이력이 난 사람들을 위해 좀더 참신한 설교를 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참신함'은 무엇으로 결정되나. 설교를 설교자 본인이 일상에서 살아냈고, 살아내고 있다는 걸 보여주면 되는 거다. 그저 교조적으로 옳은 소리 한다고 거기 얌전하게 앉아 있는 청중이 다 감동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다.  가끔 '아멘'에 취해버린 설교자는 자신의 앞에 조신하게 앉아 있는 회중의 수준을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앞에 서는 자는 항상 경계하고 경계해야 하는 거다. 요즘 내 나이대로 살아가려는 노력을 조금씩 하면서 생각하는 건데, 위대한 사람과 평범한 사람, 평범한 사람과 욕 먹는 사람의 경계는 한끗인데, 그 한끗이 뭘로 판명 나나면, 언제쯤 노력을 멈추느냐에 따라서다. 타고난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노력을 멈추면 그 빛나는 재능은 금세 탈색한다. 그러니 범인인 사람은 오죽할까. 죽도록 노력해야지. 자기가 성취한 지점에서 지나치게 만족해서 노력을 웃기지도 않게 멈춰버리는 지점이 서른 중후반이라면, 그 사람 인생은 앞으로 뻔한 거다.  감동은 철저한 자기싸움에서 나온다, 는 걸 나는 믿는다. 모두가 자기계발을 하고 모두가 동일한 스펙을 쌓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기가 업으로 삼은 자리에서, 적어도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그런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거다.  설교자 이야기로 돌아가면, 자기 레토릭을 검증하고, 꾸준히 비평을 받아야 한다는 거다. 쉽지 않다는 거 안다. 그러나 세상에서 허다한 저명한 학자도 어느 숫자 이상의 청중을 모아 놓고 자기 연구를 풀어놓을 땐, 그 강연 후에 피드백이란 걸 받는다. 테크닉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더 부드럽게 말로 풀어내는 법, 수단이 되는 언어를 얼마나 벼릴 수 있는지를 날마다 연구해야 한다. 테크닉과 삶으로 살아내는 훈련을 꾸준히 하지 않는 한, 설교자처럼 앞에 서는 직업을 갖는 사람은 나날이 얄팍해지고 편협해질 수밖에 없다. 본인이 전혀 자각하지 못한 채. 

그러니까 나는 내가 보기에 앞으로 가야할 길이 먼, 그러니까 노력을 무지하게 해야 할 개인이 하필이면 지금 이때 노력을 멈춰서 교조적이고 훈계 일변도의 장광설만 늘어놓는 것에 질려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거다. 그리고 내가 이런 글을 왜 이렇게 길게 쓰고 있냐면, 내가 지금 세상에 내놓으려는 글을 위해 무지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 노력이란 걸 기울이기 시작하다 보면, 어제보다 오늘 더 정성을 쏟는 법을 조금씩 연습하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멈춰버리고 더이상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의 면피용 설교, 강의, 글에는 아무런 감동도 받을 수 없는 거다. 또한,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버린 '어른'이 된 것 같은 시점에서, 매일 새로워지려고 어제보다는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게 얼마나 눈물겹고, 수치스러운지, 그러므로 결국은 사람을 겸허하게 만드는지를 조금씩 맛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교회에선 참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교만을 설교해서 성도를 길들인 뒤 교회에서 봉사를 시키려고 애쓰지만, 가장 심각한 교만은 자기 밥벌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고 매주 면피용 말만 늘어놓는 거다. 그렇다. 너님 제발 읽으라고 쓰는 거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Creative Commons License
Creative Commons License

'다락'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로 더듬는 아침 풍경  (0) 2012/05/02
일요일  (0) 2012/03/25
부끄러운 후렴구  (0) 2012/03/23
무려 오션스일레븐!  (0) 2012/03/22
오늘도 여기에다 일기쓰기  (0) 2012/03/21
블로그를 트위터처럼 사용하기  (0) 2012/03/20
아델 그리고 봄  (0) 2012/03/19
Posted by 하려던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