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도 두서 없는 일기
*
누군가를 만나 몇 시간을 보내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눴다고 느끼는 걸까? 방학이 되어 못 보던 친구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결국은 헤어져 집에 돌아올 때마다 이 질문이 떠올랐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혹은 둘 중 하나만을 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논문 초록처럼 띄엄띄엄 건네고 올 때, 그리고 둘 다 아는 지인들의 안부를 묻거나 뒷이야기를 하고 돌아오는 길. 결국 그 모든 이야기 뒤에 남는 건, 나는 잘 살고 있는 건가, 란 질문 같다. 나는 행복한가. 나는 잘 살고 있는 건가.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건가.
**
방학이 끝나간다. 애초에 너무나 짧은 겨울 방학. 곧 학교로 돌아갈 남이 며칠 남지 않은 이맘때가 가장 마음이 가난해지는 것 같다. 여름방학 끝의 막막함과 겨울방학의 끝이 보일 때 느껴지는 조바심은 결도 색깔도 다른 것 같다. 다시 짐을 싸고, 14시간 조금 넘는 비행을 하고, 짐을 풀어야 할 때가 온 거다. 반복적인 일상이지만 매번 떠나고 도착할 때 느끼는 감정의 저항을 굳이 매번 이렇게 감수하며 살 필요는 있는 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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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쓰인 글"이 덮어버리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친구와 나눴다. 내 겨울방학은 바로 그렇게 아름다운 비평문을 쓰는 사람이 쓴 글, 추천한 책으로 시작해서 마무리가 되가고 있는 시점에, 너와 내가 읽은 그 비평가에 대해 내가 못 보고 있었던 것을 보게 해주고, 그것을 정갈한 언어로 표현해주는 너를 만나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건 고마운 일이다.
"문단이 무슨 주소가 있는 곳인 줄 알았어요" 라고 했던 소설가에 대한 이야기. '문단'이라는 곳에서 서로 핥아주는 사람들. 문단이든 학계든 실상 다른 어디를 가든 우리는 소름끼치게 과열된 경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 어떤 직업을 갖든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서로 핥아주고 닦아 세워주며 세를 형성해가는 거겠지. 그것에 대해 새삼스레 구역질을 느낄만큼 더이상 순진하지도 않다. 밥벌이를 할 수 있고, 멘붕(멘탈 붕괴)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래도 내가 상대적으로 잘 하고 즐기는 일을 해내면 좋겠다. (라고 사춘기 소녀 마냥 서른 살 넘은 여자가 쓰고 있다.)
****
결국 학위는 따야 하고, 최대한 미적거리지 말고 빨리 논문을 끝내야 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서 듣고나니 이제 마음이 prelim준비로 완전히 기울었다. 어제 새로 배운 말 '멘붕' 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앞으로 2년 내에 학위를 받는 일인 것 같다. 그 이후를 위한 준비도 역시 미리미리 해놓아야겠다. 공장 같은 프로그램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일에 나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확신이 없으면 가르치는 내내 그다지 행복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결국 좋은 선생도 되지 못할 것이고. 공장의 비숙련공으로 남다가 쓸려 없어질 것만 같다. 밥벌이가 된다 해도, 사람을 만나 생각을 교환하는 일에 있어선 절대로 기계적이 되어서도 안 될 것 같다.
#두서도없고_우울하고_암울한_대학원생의 일기.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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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만나 몇 시간을 보내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눴다고 느끼는 걸까? 방학이 되어 못 보던 친구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결국은 헤어져 집에 돌아올 때마다 이 질문이 떠올랐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혹은 둘 중 하나만을 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논문 초록처럼 띄엄띄엄 건네고 올 때, 그리고 둘 다 아는 지인들의 안부를 묻거나 뒷이야기를 하고 돌아오는 길. 결국 그 모든 이야기 뒤에 남는 건, 나는 잘 살고 있는 건가, 란 질문 같다. 나는 행복한가. 나는 잘 살고 있는 건가.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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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끝나간다. 애초에 너무나 짧은 겨울 방학. 곧 학교로 돌아갈 남이 며칠 남지 않은 이맘때가 가장 마음이 가난해지는 것 같다. 여름방학 끝의 막막함과 겨울방학의 끝이 보일 때 느껴지는 조바심은 결도 색깔도 다른 것 같다. 다시 짐을 싸고, 14시간 조금 넘는 비행을 하고, 짐을 풀어야 할 때가 온 거다. 반복적인 일상이지만 매번 떠나고 도착할 때 느끼는 감정의 저항을 굳이 매번 이렇게 감수하며 살 필요는 있는 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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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쓰인 글"이 덮어버리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친구와 나눴다. 내 겨울방학은 바로 그렇게 아름다운 비평문을 쓰는 사람이 쓴 글, 추천한 책으로 시작해서 마무리가 되가고 있는 시점에, 너와 내가 읽은 그 비평가에 대해 내가 못 보고 있었던 것을 보게 해주고, 그것을 정갈한 언어로 표현해주는 너를 만나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건 고마운 일이다.
"문단이 무슨 주소가 있는 곳인 줄 알았어요" 라고 했던 소설가에 대한 이야기. '문단'이라는 곳에서 서로 핥아주는 사람들. 문단이든 학계든 실상 다른 어디를 가든 우리는 소름끼치게 과열된 경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 어떤 직업을 갖든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서로 핥아주고 닦아 세워주며 세를 형성해가는 거겠지. 그것에 대해 새삼스레 구역질을 느낄만큼 더이상 순진하지도 않다. 밥벌이를 할 수 있고, 멘붕(멘탈 붕괴)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래도 내가 상대적으로 잘 하고 즐기는 일을 해내면 좋겠다. (라고 사춘기 소녀 마냥 서른 살 넘은 여자가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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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학위는 따야 하고, 최대한 미적거리지 말고 빨리 논문을 끝내야 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서 듣고나니 이제 마음이 prelim준비로 완전히 기울었다. 어제 새로 배운 말 '멘붕' 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앞으로 2년 내에 학위를 받는 일인 것 같다. 그 이후를 위한 준비도 역시 미리미리 해놓아야겠다. 공장 같은 프로그램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일에 나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확신이 없으면 가르치는 내내 그다지 행복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결국 좋은 선생도 되지 못할 것이고. 공장의 비숙련공으로 남다가 쓸려 없어질 것만 같다. 밥벌이가 된다 해도, 사람을 만나 생각을 교환하는 일에 있어선 절대로 기계적이 되어서도 안 될 것 같다.
#두서도없고_우울하고_암울한_대학원생의 일기.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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