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높은뜻 숭의교회 설교방송 (http://www.soongeui.or.kr/gwtvmedia/sundayworship.asp)
사랑의 교회가 한국 기독교에서 이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재벌급 대기업으로 변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사람 수가 늘어가고, 그 사람들이 내는 헌금의 액수가 늘어갈수록, 그 에너지와 집중력이 자신들의 오만함을 나타내는 데 쓴다는 데 문제가 된다. 김동호 목사는 이런 상황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모두의 본능이 집단적으로 모여 이런 선택을 하게 만든다는 점을 지적한다. 김동호 목사는 그간의 설교에서 부의 정당한 축적을 부정하지 않듯, 여기에서도 힘/영향력을 쌓기 위한 정직한 노력들을 긍정한다.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실력을 쌓고 영향력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큼이나 방향성을 제대로 잡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 소명과 야망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을 계속 강조한다. 또한, 김동호 식 반전 스타일처럼 야망을 버리기 위해 소명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는 점을 역설한다. 야망을 버린답시고 정직한 노력을 감내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 또한 어리석은 죄라는 거다. 언제나 어려운 줄타기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정직한 공부, 검소한 소비 생활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일 텐데. 내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최우선을 삼고 있는지 늘 두려운 마음으로 돌아봐야겠다.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교회가 요즘 새 예배당 건축 때문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예배당 건축을 위하여 교회가 써야 할 재정의 규모가 2,500억 원 가까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놀라고 있습니다. 한 교회가 자신의 예배당을 위하여 2,500 억 원이라고 하는 예산을 세울 수 있다는데 우선 사람들은 놀랍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강한 힘을 새삼 느끼게 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교회의 강한 임팩트를 실감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임팩트는 좋은데 방향성이 잘못되어 OB가 나는 것이 아닌가를 염려하고 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의 공감과 동감을 얻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저는 그 교회가 2,500억 규모의 예배당을 지어야만 할 형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무조건 그 교회가 그렇게 큰 예배당을 짓는 것에 대하여 반대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예배당 건축은 교회의 여러 가지 목표와 목적 중에 하나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목표와 목적은 분명 아닙니다. 보통의 경우 사람들은 가장 큰 목표와 목적을 위하여 더 많은 돈을 쓰고, 보다 낮은 수준의 목표와 목적을 위하여서는 적은 돈을 씁니다.
예배당 건축은 교회의 제 일 가는 사명일 수 없습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대형교회의 문제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그 교회가 어떤 목적에도 사용해 본 일이 없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재정을 교회의 몇 번째 목표일 수 있는 일에 투입하려고 한다는데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무시무시한 집중 된 힘이 예배당 건축에만 발휘된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공감과 동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예배당 건축을 하면서 힘들지만 1,000 억 정도를 예배당 건축이 아닌 보다 중요한 교회의 사명과 목적을 위하여 세상에 내어 놓는다면 아마 사람들은 그 교회가 그 엄청난 예배당을 건축하는 일에 시비를 걸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2,500 억 원 짜리 예배당을 건축한 교회가 앞으로 세상을 위하여 5,000억 짜리 프로잭트를 구상하고 그것에 도전하려 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오히려 그 교회 예배당 건축을 도우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현재 까지로는 임팩트는 좋은데 (공포를 느낄만큼) 그러나 방향성은 썩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OB가 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경은 바로 그와 같은 OB를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를 히브리어 하마르티아라고 하는데 그 말의 뜻은 과녁에서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계속 OB를 낸다면 게임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우리 한국교회가 세상의 공감과 동감을 얻지 못하여 계속 쇠퇴하게 되고 급격하게 쇠퇴하게 된다면 그 상당한 책임을 그 교회가 져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설교를 제가 어느 큰 대형교회를 비판하는 설교로만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이야기는 비단 그 대형교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대개 다 비슷한 유형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을 삶의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자신을 위하여서는 엄청난 힘을 쓰지만 정작 그 힘을 그 힘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위해서는 잘 쓰려고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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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설교 정리는 여기까지이고, 김동호 목사가 설교 자리에서 (설교 자리이기에) 할 수 없었던 부분에 대해선 따로 글로 정리를 할 필요를 느낀다. 사랑의 교회가 단순히 엄청난 규모의 액수를 교회 건축에 쏟아붓기 시작했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착각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이건 사실 '징후'에 불과하다. 2003년 가을 오정현 목사가 부임한 이후 사랑의 교회가 변모해온 양상을 잘 따라가 보면, 현재의 건축 비용 모금 방식과 그것을 언론에 해명하는 방식이 새삼 놀라울 게 없을 만큼 군주적/제왕적 리더십이 정당한 논의 구조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게다가 교회 밖 시절 또한 이에 화답하듯 수상하디 수상한 때인 요즘 군주적 리더(=담임목사)께서 큰 결정 내리셨는데, 굳이 그걸 사랑의 교회 평신도만큼의 발언권도 없는 타 교회 기독교인들이나 비기독교인들이 나서서서 개교회의 문제에 대해 언급한다는 걸 도무지 오정현 목사를 위시한 교회건축위원회에 속한 목사/장로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양이다.
현재의 사랑의 교회 건축 문제를 단순히 '방향성'과 '힘'의 틀 안에서 논하기엔, 사랑의 교회의 문제가 죄성을 가진 우리 모두의 보편적 문제라고 적당이 눙치고 가기엔 사랑의 교회의 규모와 누구도 원치 않을 그 교회의 영향력이 너무나 커져버렸다는 데 문제가 있다. 위에 인용된 김동호 목사가 설교 본문에서도 "공포를 느낄만큼"이라는 말을 괄호에 넣어 (실제로 설교에서는 직접 언급을 했지만) 지적을 할만큼 사랑의 교회의 담임목사 및 기타 소수의 의사결정자들이 갖고 있는 가공할 만한 재력과 권력은 공동체적 제재가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건 사랑의 교회 내부에서 소위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고, 이미 자제나 균형감각을 유지할 만큼의 최소한의 이성을 내부에서 찾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중요한 의사 결정에서 일인 독재에 버금가리만큼 담임목사의 '사견'이 고귀한 '주님의 뜻' 내지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계획'으로 돌변하여 순식간에 유통된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 중 하나이다.
물론, 사랑의 교회 내부에서도 문제가 심각하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 어떻게 해야할까, 하며 열심히 고민하는 사람들이 소수이지만 존재하고 그런 고민을 온라인상에서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번에 뉴스 앤 조이에서 다룬 "백기사들의 공격과 절필 선언"이란 꼭지에서 다루듯 이런 내부자들은 반드시 집단의 '백기사단"에 의해 응징 당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것을 사주하는 이가 담임목사란 인물이다. 이건 단순히 목사의 치기어린 열정이나 교인의 과도한 충성심의 문제가 아니다. 사이버 테러에 가까운 폭력을 목사가 과감히 '정의/공의'의 영역으로 치환해서 그것을 교인에게 하달했고, 역시 교인이란 사람들이 그런 '폭력'을 폭력이라 인식하지 못한 채 동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익숙한 풍경 아닌가? 이런 게 소극으로 반복되는 역사란 건지. 이런 폭력은 "원죄를 지닌 우리"기에 언제나 가능한 일이기에 우리 내부를 돌아보자, 정도의 교훈적인 설교의 소재로 다룰 수 없는 부분이다.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모른다 해도, 폭력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는 이성을 인간들은 어느 정도 갖고 있지 않은가. (아니면, 이성 따위는 사실 허구였음을, 그러니까 포스트모던한 사회가 도래한 것임을 사랑의 교회가 스스로 알려주는 건가? 그렇지만, 모든 '이즘'과 거대한 이성 담론이 부정되고 해체된되는 곳에서도 타인에 대한 '윤리'라는 게 생겨나는 데 교회는 왜 전체주의 체제로 회귀하려고 하는 거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내겠다고 해서 모은 (혹은 일정 시간 내에 모일) 금액과 그 금액의 사용처를 놓고 '비'성도들이 왈가왈부한다는 데 사랑의 교회는 몹시나 불쾌함을 나타내는 것 같다. 과연 이게 누구의 불쾌함일지, 불쾌함이 어떻게 표출되어 확산되고 있을지는 명백하지만, 내가 궁금한 건 어째서 이처럼 파장이 큰 화두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설명하고 이해시키거나 이해하려 들지 않고 불쾌나 유쾌의 '감정'의 문제로 환원시키려고만 하는가이다.
(참고: 사랑의 교회의 담임목사의 감정선이 어떻게 일파만파 교회의 '대의'로 변모하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사랑의 교회 6부 예배를 참석하길 권한다. 2부 설교는 녹화, 편집되어 홈페이지에 오르는 만큼 오정현 목사가 가장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고 돌발 감정 표출을 억제하지만, 6부에는 자신의 지지층이 상당수인 혹은 반대파도 상당수인 '젊은이'들이 모이는 예배이기에 그가 평소에 하고싶은 말을, 아니면, 예배 사이사이마다 온라인으로 올라오는 그의 설교에 대한 비판/비평에 대한 해명--주로 억울함이 주를 이룬다--을 소위 off-the-record식으로 아니면 '우리끼니까 하는 말인데'라는 식으로 가감없이 쏟아내는 시간대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가서 느껴보시라. 아마 그의 설교에 대한 비평/비판이 온라인 블로거들에 의해 쏟아지고 있을 때 혹은 그의 이메일 함을 채우고 있을 요즘과 같은 시기에 6부 예배를 방문해본다면 새로운 시야를 확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다만, 본당에서 듣고싶다면 최소 30분 전에 가서 줄을 서시길. 줄을 서다보면, 사랑의 교회가 왜 교회 건축을 하겠다고 하는지 그 근원적 필요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넓은 교회 건물이 꽉꽉 들어찼는데도 여전히 예배할 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진풍경은 부인할 수 없는 사랑의 교회의 현실이다.)
정리하면, 사랑의 교회 내부에서 자정작용이 일어나지 않고, 다른 교회 목사들이나 교단이 이번 문제에 대해서 함구하는 한, 적절한 제재장치를 제시하지 않는 한 사랑의 교회는 이보다 더 놀라운 결정들로 우리를 놀라게 할 것이다. 그보다 더 두려운 건, 앞으로 수많은 유사 사랑의 교회들이 비슷한 행보를 보이면서 사람들의 놀라움이 아닌 냉소를 사는 일이다. 사랑의 교회 건축을 둘러싼 논쟁들이 지금의 뜨거운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는 건 그나마 사람들이 사랑의 교회엔 조금 다른 것을 기대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앞으로는 사랑의 교회가 이보다 더한 일을 벌인다 해도 사람들이 놀라지 않고 반응조차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끔찍한 일이지 않을까.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되는 2009년인데, 앞으로의 사랑의 교회 행보가 기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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